만듦새에 충실한 비주얼 노벨을 만드는 아트 오브 텐스 이야기
2013년 국산 키네틱 노벨이라는 이름으로 <억새밭 사잇길로>라는 게임이 등장했습니다. 개발자의 이름도, 직업도 어떤 것도 알 수 없었지만 일본 비주얼 노벨들이 범람한 2013년에 <억새밭 사잇길로>는 나름의 영역을 개척하며 국내 비주얼 노벨 팬들에게 짧지만 선명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021년 유튜브에 OST를 공개하며 새로운 <억새밭 사잇길로>의 리메이크를 알렸습니다.
첫번째 [창작자를 읽다] 주인공은 자그마치 10년이 지난 2023년 지금 새로운 <억새밭 사잇길로>를 들고 돌아온 제작팀 아트 오브 텐스 입니다. 10년만에 <억새밭 사잇길로>를 들고 온 제작팀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01 다양한 비주얼노벨의 시대, 아트 오브 텐스만의 이야기가 부활하다
스토브인디 펀딩팩 선정작 : <억새밭 사잇길로>
<억새밭 사잇길로> 는 고등학생인 나호와 억새밭에서 우연히 만난 은세미라는 여성이 사진사와 모델이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려낸 비주얼 노벨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비주얼 노벨을 즐겼던 아트 오브 텐스 팀장 월주님은 이러한 수많은 비주얼 노벨과 서브컬쳐물을 접하면서 왜 한국에서는 이런 만듦새 좋은 게임이 없을까를 수없이 생각하다 직접 나만의 이야기로 게임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02 인생을 바꿀 결심, “제대로 된 비주얼 노벨을 만들어 보자.”
<억새밭 사잇길로>의 탄생에 영향을 준 작품들 (좌 :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우상 : 슈타인즈 게이트, 우하: 클라나드)>
月主: 거창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저도 수많은 팬 중 하나로써, 페이트나 클라나드, 슈타인즈 게이트 등의 다양한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죠.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을 줄곧 경험해오던 입장으로써 국내에 서비스 되고 있는 비주얼노벨 시리즈들은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부분이 꼭 한 가지씩은 있었습니다
시나리오가 너무 단순하거나 일러스트의 퀄리티가 좋지 못하거나 용의 머리로 시작해 뱀의 꼬리로 끝나는 등 개연성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아쉬움이 너무 많아지니 이러한 아쉬움을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직접 만들게 된 거죠.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유저에게 있어서 아쉬움은 게임 자체가 아니라 엔딩이어야 합니다.
아 왜 벌써 끝났지, 그래서 얘네 둘은 어떻게 되는 거야. 유저들이 그 다음 내용, 엔딩 이후를 궁금하게끔 만들고 그 이후의, 유저가 궁금해 하는 내용은 필요 이상으로 주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작품이 끝나고도 작품은 유저와 함께할 수 있고 작품을 통해 유저의 마음이 움직였다면 2차 창작 등도 생산될 수 있겠죠.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게임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트 오브 텐스의 첫 작품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는 더 늦지 않게 해봐야겠다는 도전에 가깝습니다.
03 <억새밭 사잇길로>를 위해 모인 사람들
月主, XELDOG, SowB
月主: 스크립터인 XELDOG과는 8년지기 형 동생 사이입니다. 어찌어찌 알게 되고 모이게 된 오타쿠 단톡방 멤버들 중 하나였는데 제가 평소에 소설을 쓴다는 걸 알아서인지 갑자기 같이 게임을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물어 봤어요. 그 때 당시 저는 대학교 3학년 말이었고 모 라이트노벨 공모전에서 1차까지 뚫었다가 떨어져서 물을 먹은 상황이었죠. XELDOG 같은 경우는 그냥 넌지시, 막연히 자기가 제작에 도전해볼만한 게임을 만들고 싶어 했어요.
둘에게는 뭐가 됐든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전 이미 2013년에 억새밭 사잇길로 구버전을 이미 개발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고 게임 개발을 만만히 봐선 안 된다는 걸 몸소 체험했기에, 우선 규모가 작은 단기 프로젝트부터 진행하기로 마음 먹었죠. 그게 A.O.T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때는 아직 팀 이름조차 없었지만요.
<주인공 은세미역의 박기령 성우님, 시헌 역의 엄강식 성우님의 녹음 현장>
AD를 맡고 계신 SowB님은 조금 뒤늦게 합류하셨습니다. 트위터를 돌아다니면서 함께 프로젝트를 할 분을 구하고자 했는데 제 시나리오와 합이 잘 맞으실 것 같은 분을 찾느라 엄청 애를 먹었던 기억이 듭니다. 그리고 툭 까놓고 말해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인원을 필요로 했어요.
이미 프로이신 분들은 아무런 실적이 없는 저희와 함께 하지 않으실 테고 그렇다고 실력이 없다면 게임의 퀄리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트위터에서 A.O.T의 프로젝트에 참여 해주실 일러스트레이터 분들을 한 분 한 분 컨택 하기 시작했고 마흔 두 번째 거절을 당하고 마흔 세 번째에 컨택 드린 일러스트레이터가 SowB님이셨죠.
언젠가 시간이 있어 SowB님께 왜 참여를 결정했는지 넌지시 물어보니 시나리오가 참 마음에 들었다 하셨습니다. 저희 게임이 아주 단순한 미연시거나 그냥 평범하기만한 작품이었다면 참여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하시더군요.
저는 AD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고 AD는 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으니 그런 면에서 확실히 저희의 ‘억새밭’은 시너지가 좋은 편인 것 같습니다.(웃음)
04 10년 만의 새로운 작품, 왜 리메이크를 결정했을까
<텀블벅 크라우드펀딩 페이지에서 비교한 구작과의 변화>
月主: 재차 개인적인 지론입니다만 프로젝트를 이끄는 건 감성과 열정이 아니라 이성입니다. 가슴은 뜨겁지만 머리는 항상 차가워야 합니다.
비주얼노벨의 디렉터로써, 그리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써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습니다. 하지만 A.O.T의 동료들은 이번이 처음 시도하는 첫 작품이며 프로젝트 시작 당시에는 서로 합이 맞을지 어떨지도 알 수 없었죠. 동시에 A.O.T는 신생팀이고 비주얼노벨에 대한 열정으로만 모였지 그 어떤 기술력도 노하우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첫 프로젝트는 팀원간의 합을 맞추고 노하우를 쌓기 위한 발판으로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는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된 게 억새밭 사잇길로의 리메이크였고요.
억새밭 사잇길로는 10년 전에 무료로 공개한 타이틀이지만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이었거든요. 빛을 보지 못한 이유가 정말 어이 없게도 디렉터가 게임을 완성하고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다운로드 사이트가 터졌습니다. 드롭박스에 하나, 4shared에 백업으로 하나. 두 군데에 올려뒀는데 두 군데 다 터졌더군요. 드롭박스는 아직도 멀쩡하게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는데 도대체가 다운로드 링크가 터진 이유를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렇게 사이트가 터지고 배포 파일을 다시 한 번 찾아서 등록하려고 했는데 아뿔싸. 외장하드를 정리한다고 해서 지워버렸던 설치파일이 억새밭 본편이었지 뭡니까. 그 때 당시 본편과 데모판의 게임 아이콘이 똑같다 보니 본편을 지우고 데모판을 외장하드에 저장해두고 있었던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구버전의 스크립트를 짜준 친구에게 재배포를 위하여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 친구도 그 타이밍에 공군에 들어갔던 지라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 때 군대는 핸드폰을 쓸 수 없었거든요.
프로젝트 폴더는 남아있었지만 스크립팅 지식이 거의 없던 터라 쉽게 손을 댈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억새밭 사잇길로 구버전은 그렇게 아주 잠깐 인터넷 상에 퍼지고는 소리소문도 없이 묻혀버리고 말았죠. 플레이하신 분들도 극히 적었을 거라 예상합니다.
어쨌거나 그런 과거를 가진 비주얼노벨이었기에, 리메이크라는 이름을 쓰기에 충분했습니다
05 쉽지 않은 인디게임 개발의 길, 펀딩 이후의 든든한 후원군이 되어준 펀딩팩
<펀딩팩과 함께 새로운 탄생 준비를 하는 억새밭 사잇길로>
月主: 텀블벅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은 저희가 오랫동안 준비한 게임을 더욱 보완하기 위해 마련한 기회였지만 펀딩팩은 그러한 게임을 더 널리 알릴 기회의 장으로 작용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인디게임 개발은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본의 문제도 있고, 시간의 문제도 있죠. 스토브인디의 펀딩팩은, 그러한 문제점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아주 든든한 후원군이 되어주었습니다. 저희와 같은 인디게임 개발자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감사한 일이죠.
A.O.T는 더욱 많은 게임팀들이 펀딩팩을 통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보다 다양한 기회를 잡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이런 기회가 더욱 많아져 더욱 다양한 게임이 나온다면 유저도 즐겁고 게임이 호평이라면 개발자도 즐거울 겁니다. 그렇게 나온 게임들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 또 다른 개발자가 되어 더욱 많은 게임을 만들겠죠.
그런 선순환의 구조, 상상만해도 즐겁잖아요.
물론 스토브인디의 펀딩팩은 이번이 첫 런칭이고 아직 많은 부분들을 보완해 나가야합니다.
갈 길이 구만 리겠죠. 커뮤니티 등을 보면 아직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선 기대와 걱정이 반반씩입니다.
A.O.T는 그런 펀딩팩의 첫번째 파트너로써 그리고 유저 분들에게 A.O.T만의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은 인디게임팀으로써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겁니다.
유저 분들께서는 그런 저희 팀의 행보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그런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해 나가고자 합니다.
06 앞으로의 아트 오브 텐스
<개발사의 로망이 담긴 억새밭 사잇길로>
月主: 들려줄 이야기는 많고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넘쳐나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는 없네요. 게임을 개발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 자본, 그리고 팀원간의 화합 등. 모든 부분이 인디게임 팀에게 있어서는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솔직히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어요. (하하)
장황하게 이거 저거 하고 싶다고 늘어놓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팀은, 그냥 그렇게 멋들어지게 늘어 놓는 게 아니라 내뱉은 말을 현실로 만들고 싶거든요. 말에 무게가 실리려면 그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입에 담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단어를 빌려, 《억새밭 사잇길로》가 성공하게 된다면 다음 번에는 《억새밭 사잇길로》로 보다 더 멋지고 더 넓은 세계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차기작의 플롯은 이미 구상 중에 있거든요.
히로인도 늘리고 전투씬도 늘리고, 고생은 깨나 하겠지만 유저 분들이 즐겨주신다면 무엇보다 기쁠 겁니다.
텀블벅 후원 시에 제가 표어로 내걸은 문구가 있습니다.
“아직, 당신의 로망을 기억하십니까?”
프로젝트 억새밭은, 그 로망을 실현하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07 아트 오브 텐스의 가치
<제 10의 예술이 담긴 아트오브텐스의 로고>
사실 이 부분은 더 사족을 보탤 게 없는 게, 팀 이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트 오브 텐스라는 이름은 열 번째 예술이라는 의미입니다.
프랑스의 예술 분류법을 따르면 2023년 기준 현재 제1부터 제 9의 예술까지 지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만화는 제9의 예술로 인정받고 있으며 게임은 현재 프랑스 국내에서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아트 오브 텐스가 창설되는 시점에서는, 제10의 예술이란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런데 23년이 되어 진짜 제 10의 예술이 게임이 되려 하다니 감개가 무량할 따름입니다. 한국의 경우 22년 9월 7일 문화예술진흥법에서 규정하는 문화예술 범위에 게임을 포함시키는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고 합니다.
A.O.T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게임이라는 엔터테인먼트이면서도 동시에 작품으로 불릴 수 있는 그런 매체를요.
우리는 그런 매체들을 만들어, 유저 분들께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해본 적 없습니까? 스타크래프트가 전세계적으로 1100만장 팔렸는데 비주얼노벨이 전세계적으로 1100만 다운로드가 된다면? 그건 역사에 기록을 세우는 거잖아요.
물론 그 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고, 비주얼노벨이란 마이너 장르에서 1100만 다운로드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불가능에 가깝죠. 하지만 만들어 보고는 싶어요.
A.O.T의 게임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그 순간을요.
이 팀은 그러기 위한 시발점에 서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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